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이탈리아의 저성장과 청년 실업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이탈리아의 경제적 모순과 그 역사적 변천
목차
유럽의 대표주자, 이탈리아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어쩌면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저성장과 청년 실업에 빠진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보통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입니다. 이들 국가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럽을 대표하며 경제 규모 또한 가장 큽니다.

경제 규모로 보면 독일이 1위, 영국 2위, 프랑스 3위, 이탈리아가 4위입니다. 독일은 원래 경제 강국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탈리아가 4위라는 사실에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과거에는 독일과 경제 수준이 비슷했습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양국의 경제 규모는 큰 차이가 없었고, 이탈리아는 패션, 예술, 역사, 관광 외에도 세계적인 제조 강국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자동차, 기계, 가구, 섬유 등 다양한 제조 분야에서 독일 다음으로 큰 규모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속에서 과거의 영광이 퇴색되고 있습니다.
2024년 GDP 성장률은 0.6%, 청년 실업률은 17.8%였는데, 이 수치는 역사상 최저 수준임에도 여전히 높은 수치입니다. 과거 2014년에는 청년 실업률이 43.6%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실업률은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을 제외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체감 실업률은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사회 문제 중 하나는 니트족(NEET)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니트족 비율은 23%에 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실업 문제를 넘어선, 청년층의 경제활동 중단이라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반영합니다.
경제 기적의 시대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 상태였고, 미국의 마셜 플랜을 통해 12억 달러 이상 원조를 받아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특수와 함께 제조업 수요가 급증하면서 1950년대~60년대에는 제조업 성장과 도시화가 본격화되며 경제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를 '이탈리아의 경제 기적'이라 부르며, 북부의 공업 삼각지대 중심으로 제조업이 번성하며 유럽 제2의 제조 강국이 되었습니다. 1957년 출시된 피아트 500은 이 시기의 상징이 되었고, 도시들은 밀라노, 토리노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는 노동자들의 소득과 근무 환경 격차, 북부와 남부의 지역 간 불균형, 부패 문제, 대규모 파업, 오일쇼크 등으로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남부는 개발에서 소외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부 개발 기금이 조성되었지만, 그마저도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침체와 테러의 시대
1970년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였습니다. 경기는 침체되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실업률이 높아지고 청년 실업도 심각해졌습니다. 동시에 테러와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납치와 테러의 시대'도 겪었습니다. 극좌·극우 세력의 테러가 난무했고, 전직 총리가 납치·살해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사회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렸고, 그 결과 국가 부채는 GDP 대비 60%를 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환율도 급등해 1달러당 560리라에서 1,400리라까지 상승했습니다. 1980년 인플레이션은 20%를 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일상이 되었고, 적색여단(Brigate Rosse)과 같은 테러 조직들이 정치인, 판사, 기업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했습니다. 1978년에는 알도 모로(Aldo Moro) 전 총리가 납치된 후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개혁과 재건의 시대
1980년대에 들어 정부는 긴축과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1981년), 물가 연동 제도를 폐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했습니다. 이 제도는 임금을 자동으로 물가에 연동해 인상하는 구조였지만, 경제 부담이 커져 폐지되었습니다.

1981년, 당시 재무장관 베니아미노 안드레아타(Beniamino Andreatta)는 이탈리아 재무부와 중앙은행(Banca d'Italia) 간의 "디보르초(divorzio, 이혼)"를 선언했습니다. 이 조치로 중앙은행은 정부의 국채를 자동으로 인수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이는 통화 공급을 제한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통화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가 연동 제도(Scala Mobile) 폐지
1980년대 초, 이탈리아는 임금과 물가의 자동 연동 시스템인 '스칼라 모빌레(Scala Mobile)'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었으며, 1984년 베티노 크락시(Bettino Craxi) 총리는 이를 축소하는 법안을 도입했습니다.
1985년 국민투표에서 이 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물가 연동 제도는 점진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영국을 추월해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를 '일 소르파소(Il sorpasso)'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고 학자들은 구조적 문제를 경고했습니다. 지하 경제 규모가 GDP의 25%에 달했고, 국가 부채가 GDP 대비 104%에 달하는 등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였습니다.
이 개혁들은 단순한 경제 정책 변화가 아닌 정치적 갈등과 타협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크락시 정부와 노동조합(특히 CGIL) 간의 대립은 격렬했으며, 1984년 법령 제출 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공산당과 사회당 간의 이념적 갈등이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개혁들은 이후 이탈리아가 유럽통화연합(EMU)에 참여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의 성격도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각국은 통화 통합을 위한 준비 과정에 있었고, 중앙은행 독립성은 그 전제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유로화 도입과 구조적 문제
1990년대 초에는 유럽환율조정제도(ERM) 참여 중 투기 공격으로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통화 위기를 겪었고, 동시에 정치권의 부패 스캔들인 '깨끗한 손(마니풀리테)' 수사가 터지며 기성 정당들이 몰락했습니다. 정치는 마비되었고 신뢰는 붕괴되었습니다.

결국 유럽연합의 유로화 도입 조건(GDP 대비 재정적자 3% 이내, 국가부채 60% 이내)을 맞추기 위해 긴축 재정을 실시했습니다. 연금 개혁, 복지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단행하며 이탈리아 경제 상징이었던 국영 지주회사 IRI 산하 철강, 통신, 에너지, 금융 산업들이 민영화되었습니다. 1999년 1월 유로화를 도입하며 리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유로화 도입으로 통화 정책 자율성을 잃게 되었고, 경기가 침체될 때 환율이나 금리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2000년대에 들어 경쟁력을 점차 잃어갔고, 핵심 문제는 생산성 정체였습니다. 기술 혁신이나 경영 효율에서 다른 국가에 뒤처졌고,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인해 해고보다 이혼이 쉽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기를 꺼렸고, 중소기업과 협동조합 중심의 구조가 고착되었습니다. 글로벌 테크 대기업이 하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며, 청년 고용도 경직된 구조 속에서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능력 있는 청년들은 해외로 이주했고,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집에 머무르며 비경제활동인구가 되었습니다. 피아트도 경영 위기를 겪었고,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폭발합니다.
이탈리아는 7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전후 최악의 경기 침체에 빠졌습니다. 유럽 채무 위기 국면에서 이탈리아는 국가 부채가 GDP 대비 120%를 초과했고, 국제 신용 등급 하락과 금리 상승, 저성장의 삼중고를 겪었습니다.

청년 실업과 고령화의 이중고
유럽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위기는 일단 진정되었지만, 경기 회복은 더뎠고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했습니다. 마리오 몬티 비상내각이 출범하며 연금 개혁과 긴축 재정을 단행했지만 체감 경기 회복은 없었고, 실업률은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2014년에는 청년 실업률이 다시 42.7%를 기록했습니다.

정치적 불신이 커지며 거리 시위와 함께 포퓰리즘 정당들이 힘을 얻었고, 이는 개혁의 지속을 막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2008년 GDP 대비 106%에서 2020년대 들어 135%까지 상승했으며, 이는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이탈리아는 성장 엔진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024년 기준 GDP는 여전히 2007~2008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청년 실업률, 노동시장 경직성, 지하 경제, 부패, 인구 고령화, 빅테크 기업 부재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는 평균 연령 46.5세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고령화된 사회이며, 출산율은 1.24명으로 낮은 편입니다. 2020년 기준 부패 인식 지수는 르완다보다 낮을 정도로 부패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G7 회원국이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 하나이지만, 성장의 정체와 미래 불확실성으로 인해 위기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며,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이탈리아의 이야기, 이번 편은 여기까지입니다.